

호는 벽해(碧海)이고, 양서봉(梁瑞鳳)이라고도 한다. 평북 철산(鐵山)에서 출생했다. 1919년 3 ·1운동 직후 최시흥(崔時興)
휘하의 천마산대(天摩山隊)에 입대하여 일본의 행정기관 파괴, 친일파 암살 등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. 1920년 천마산대를
따라 중국 지린성[吉林省]으로 건너가 1923년 육군주만참의부(陸軍駐滿參議府) 소대장과 제3중대장을 역임하다가 조선혁명군
총사령에 취임하였다.
1932년 중국의용군 총사령과 이춘윤(李春潤)과 한중연합군을 조직, 융링제성[永陵街城]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, 싱징현성[興京縣城]을
함락시켰다. 그해 재차 융링제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칭먼[江淸門]으로 퇴각, 재기를 도모하던 중 일본 육 ·공군(陸空軍)의 대규모 공격에 패하고,
일본첩자의 유인으로 퉁화현[通化縣] 터우다오거우[頭道溝]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어 독립군 전원과 함께 순국하였다
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. 1995년 8월 29일 랴오닝성[遼寧省] 신빈현[新賓縣] 왕칭먼[旺淸門]에 그의 조각상이 세워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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